독립운동가 이봉창

이봉창의사 연보

  • 1945. 12. 23 서울 운동장에서 이봉창 의사 등 순국선열 추념대회가 金九(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다. 金九(김구)는 日本(일본)의 朴烈(박열)에게 이봉창 의사를 비롯한 尹奉吉(윤봉길), 白貞基 (백정기) 의사 유해의 한국 봉환을 의뢰하다.
  • 1946. 02. 19 東京 神田共立講堂(동경 신전공립강당)에서 이봉창 의사를 비롯한 尹(윤), 白(백) 세 의사의 유해 봉환회가 열리다.
  • 1946. 04. 20 이봉창 의사를 비롯한 세 의사 유해 등이 東京(동경) 유골봉안회장 徐相漢(서상한)등에 의해 東京(동경)을 출발, 귀국길에 오르다.
  • 1946. 05. 15 이봉창 의사 유해 등은 日本(일본) 關西(관서)지방을 거쳐 玄海灘(현해탄)을 건너 釜山(부산)으로 無言(무언)의 還國(환국)을 하다.
  • 1946. 06. 15 釜山(부산)공설운동장에서 金九(김구)등 임시정부 요인들을 비롯한 5만 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회 열리다.
  • 1946. 06. 16 이봉창 의사 유해 등 釜山(부산)역에서 ‘해방호’ 열차편으로 서울에 도착, 太古寺(태고사)에 안치되다. 李承晩(이승만)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단한 安慰式(안위식)이 거행되다. 太古寺(태고사)에는 연일 연령 참배자가 줄을 잇다.
  • 1946. 06. 30 이날 거행될 예정이였던 이봉창 의사를 비롯한 세 의사의 國民葬(국민장)이 연일 쏟아지는 장마로 인해 7월 6일로 연기되다.
  • 1946. 07. 04 金九(김구), 귀국 후 첫 성명 “同胞(동포)에게 告(고)함”에서 이봉창 의사와 尹(윤)의사에 관해 언급하다.
  • 1946. 07. 06 이봉창 의사를 비롯한 세 의사의 國民葬(국민장)이 金九(김구),李承晩(이승만), 李始榮(이시영), 呂運亨(여운형) 등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되어 오후 3시 하관 입토하고 끝나다.
  • 1962. 03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건국공로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다.
  • 1962. 11. 06 이봉창 의사 동상, 효창공원에 세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