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이봉창

이봉창의사 연보

  • 1931. 01 大韓民國臨時政府(대한민국임시정부)를 방문해 金九(김구) (白貞善(백정선))과 첫 대면하다. 영국 전차회사에 취직 부탁했으나 영어, 중국어 못해 취직 단념.
  • 1931. 03 明華(명화)철공소에 취직. 두번째 金九(김구)와 만나 日本(일본) 국내사정에 관해 이야기 나누다.
  • 1931. 04 세번째 金九(김구)와 만나 천황살해의 의의에 대해 논의하다.
  • 1931. 05 金九(김구)를 만나 독립투쟁에 관해 논의하는 가운데 “폭탄을 구해주면 日本(일본)에 가 거사하겠다”고 밝히자 金九(김구)는 “ 결심이 확고하다면 내가 후원자가 되어 폭탄을 구해주겠다”고 답변, 양자 사이에 의기 투합하다.
  • 1931. 09 악기상점인 榮昌公司(영창공사)로 직장을 옮기다. 金九(김구)를 만나 폭탄 입수 독촉하자 金九(김구)는 이봉창 의사의 결심을 확인하면서 폭탄은 물론 거사비용도 마련하겠다고 밝히다.
  • 1931. 12. 13 金九(김구)를 만나 러시아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金九(김구)에게서 거사자금으로 중국 돈 3백불을 받고 사진관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손에는 2개의 수류탄을 들고 가슴에 ‘일본천황 살해를 맹세’하는 선서문을 달고 사진을 촬영하여 韓人愛國團(한인애국단)에 제 1호로 가입하다.
  • 1931. 12. 15 金九(김구)와 만나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먹고 中興(중흥)여관에 투숙하여 수류탄 사용법을 배우고 의거결행 일시와 장소에 관해 논의했으나 모두 이봉창 의사에게 맡기기로 하다.
  • 1931. 12. 16 金九 (김구)와 만나 다른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 먹은 후 시계점으로 가 金九(김구)에게서 8원 80전의 시계를 사 받고 中興(중흥)여관에 투숙하여 수류탄 운반방법을 배우고 이력서를 작성하여 金九(김구)에게 제출하다.
  • 1931. 12. 17 아침에 金九 (김구)와 狀元縷(상원루)에서 의거성공기원 축배를 들고 사진관에서 기념사진 찍고 이별의 악수를 나눈 뒤 헤어져 오후 3시 日本(일본) 伸戶(신호)행 우편선 氷川丸(빙천환)에 승선, 日本(일본)을 향해 上海(상해)를 떠나다.
  • 1931. 12. 19 일본 神戶(신호)에 상륙, 전차로 오사카에 도착하여 梅ノ屋(매별옥) 여관에 투숙.
  • 1931. 12. 22 오사카역에서 燕(연)호 열차로 東京(동경)에 도착, 淺草(천초)의 尾張屋(미장옥) 여관에 투숙.
  • 1931. 12. 23 金九(김구)에게 1백원의 송금을 요청하는 전보 치다.
  • 1931. 12. 28 새해 1월 8일 代代木(대대목) 연병장에서 육군 始觀兵式(시관병식)이 열리며, 觀兵式(관병식)에 天皇(천황)이 참석한다는 (朝日新聞(조일신문) 기사를 읽고 이날을 의거결행일로 정하다. 尾張屋(미장옥) 여관에서 수류탄을 언제든지 던지면 폭발하도록 손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