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 기념사업

이봉창 의사

  • 독립운동가 이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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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생과 성장
  • 민족 차별에 눈을 뜨다
  • 싹트는 항일 의식
  •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이 되다
  • 의거와 그 영향
  • 상훈과 추모
김구와의 만남,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이 되다 1930년 12월 6일 이봉창은 일본을 떠나 10일 상해에 도착했다. 1931년 1월 초 대한민국 임시정부 겸 민단사무소를 처음 찾아갔으며, 명화철공소에 취직한 후 3월에 다시 찾아갔다. 이 시기 이봉창은 김구(金九) 와 대면하면서 독립운동의 의지를 키워 갔으며, 일왕 폭살 계획을 추진하였다. 또한 수류탄은 중국군으로 근무하는 왕웅(王雄,金弘壹의 중국 이름)에게 부탁해 상해공병창에서 1개를 구하였고, 김현(金鉉)으로부터 수류탄 1개를 입수하였다. 의거를 앞둔 이봉창은 1931년 12월 13일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인애국단 제 1호 단원으로서 비장한 결의를 다졌다. “제 나이가 31세 입니다. 이 앞으로 다시 31세를 더 산다하여도 과거 반생생활에 맛본 것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이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 하면 31년동안 인생 쾌락을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 쾌락을 도(圖)키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을 목적하고 상해로 왔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 내 낯에는 자연 회연(懷然)한 기색이 있는지 이씨는 나를 권한다. “나는 영원 괘락을 향(享)코저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양인이 희열한 안색을 띄고 사진을 찍읍시다.” 나 역시 미소를 띄고 사진을 찍었다. - 「 백범일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