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 기념사업

이봉창 의사

  • 독립운동가 이봉창
  • 이봉창 의사 연보

이봉창 의사 연보

HOME > 이봉창 의사 > 독립운동가 이봉창
  • 출생과 성장
  • 민족 차별에 눈을 뜨다
  • 싹트는 항일 의식
  •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이 되다
  • 의거와 그 영향
  • 상훈과 추모
차별과 수모, 그리고 싹트는 항일 의식 이봉창이 일본에서 겪은 차별은 1928년 일왕 히로히토의 즉위식을 구경하러 교토에 갔을 때였다. 당시 그는 스미토모 신동소 아마가자키 출장소의 상용인부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봉창은 교토에서 일왕인 히로히토의 즉위식이 거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 광경을 구경하고자 아마가자키를 떠나 오사카를 거쳐 교토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일본 경찰의 제지를 받고 9일간 유치장에 갇혀 지냈다.이 과정에서 이봉창은 조선인이 겪는 차별과 수모의 실상을 더욱 실감했고, 이 때의 경험은 후일 항일 의식과 독립사상으로 표출되었다. 이봉창은 일본 이름을 사용하며 2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을 목도하며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비관 하였다. 그 즈음에 중국 상해에는 영국 전차회사가 조선인을 우대하며, 또한 그 곳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어 조선인들을 도와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조선인 이봉창으로 떳떳하게 살수 있는 길을 찾아 1930년 12월 중국 상해로 발길로 옮겼다.